김영천의 아나키즘 시


05 김영천의 아나키즘 시


공민왕 신당(恭愍王神堂)

김영천
2025-01-01



< 공민왕 신당(恭愍王神堂) >


 


김 영 천(金永千)


칠흑보다 짙은 어둠

야반 삼경. 

그와 그의 아들은

궁궐 담을 넘어 

좀이 가득 슨 면류관을 훔쳤다.


하늘에 닿은 

억울 억울이어도,

작은 나라가 

큰 나라를 거스를 수 없다며

창 거꾸로 들었다.


이윽고

그들의 무리가 

대를 이어 세세손손

숨소리 편안하게 누운 

종묘.

 

금 간 옥새

거적에 말렸고

고려는 오래전부터 구멍이 숭숭났다.

거미줄 처진 행랑채에서

연방 신음하는 공민왕

포승줄에 묶였다.

 

해지고 찢긴 곤룡포가

꿈틀대지만

재갈 물린 혀는 굳었다.

 

새해 첫날 

흰 눈이,

부서진 나라를 조문(弔問)하며

무겁게 내렸다.


슬그머니 날아온

참새 한 마리.

산사나무 

붉은 열매를 떨어뜨리고

한참동안 울어 댔다.



        * 공민왕 신당(恭愍王神堂) - 조선조 임금의 위패를 봉안한 종묘에, 고려 제31대 공민왕의 신당이 부속 설치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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