김영천의 아나키즘 시


05 김영천의 아나키즘 시


능소화와 쌍무지개 뜬 연못

김영천
2024-02-03



< 능소화와 쌍무지개 뜬 연못 >




김 영 천(金永千)


이른 아침,

연못을 돌며

잉어 떼처럼 헤엄치던 햇살이

무지개를 펼쳐놓더군요.

 

색동옷 입은 무지개 두 개가

수양버들 아래에서 수다를 떨었어요.

버들 가지에 매달린 청개구리는

하늘 저편에서 밤새 건너온 이슬을 마시며

귀 기울이고 있었지요.

 

흙 담장 위 

능소화가

초록빛 바람을 따며 하늘거렸다지요.

능소화 그늘에서

하품하던 고양이는 설핏 잠이 들었어요.

늦잠 자다 부리나케 물 마시러 가던 새앙쥐가

고양이 꼬리를 밟았다더군요.

 

잠 깬 고양이는

화를 참고

능소화에게 줄 물을

세 바가지 떠오라고 했어요.

새앙쥐는 한 바가지도 무겁다며

작은 입 삐죽였는데,

두 눈 치켜뜬 고양이가 발톱을 세우자

능소화 꽃잎 위로 서둘러 올라갔다지요.

 

능소화가

초록빛 바람 하나를

고양이 목에다 걸어 주었어요.

새앙쥐는 연못에서 두 바가지 물을 떠왔다더군요.

 

청개구리가 버들잎새로 피리를 불더니

무지개에게 속삭였어요.

내일 아침에는

늙은 고양이와 새앙쥐가 손잡고

연못에 놀러 올 수 있을까요?

햇살은 여전히

싱싱하게 반짝거렸지요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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